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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장영표 교수 - 오래된 미래, 천연물 의약품의 시대 도래

천연물 특집 기고 / 장영표 경희대학교 약학대학 한약학과 교수

오래된 미래, 천연물 의약품의 시대가 오고 있다

장영표 교수

우리나라 천연물연구의 중심인 한국생약학회는 2021년 12월에 개최된 제52회 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천연물: 오래된 미래로부터의 영감’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이 중 ‘오래된 미래’라는 문구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Botanical Drug’을 이처럼 잘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 까하는 감탄에서였다. 21세기 새로운 의약품의 종류로 기대되고 있는 ‘Botanical Drug’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우선 의약품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류역사의 대부분의 시기에 해당하는 19세기 초까지는 평소에 식용하지 않던 식물들의 추출물을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도하여 ‘특정 식물이 특정 증상 또는 질병에 효과적이다’라는 식의 경험적 지식들이 지구 전역에서 축적되고 전승되어 의약지식으로 활용되었다.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독특한 철학체계를 기반으로 한 한약이라는 형태의 의약품이 수천 년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용되어 오고 있다.

의약품의 역사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혁신은 19세기 초 독일의 한 약제사 1)로부터 촉발되었다. 화학의 발전과 함께 약으로 사용해 오던 식물추출물이 실제는 수많은 유기화합물들의 혼합물임이 밝혀지고, 이들 중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물질을 순수하게 분리하게 되면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현대의 의약품들중 특히, 페니실린으로 대표되는 항생물질의 개발을 통해 인류는 이전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높은 평균 연령대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 등의 일반의약품으로부터 병원에서 처방받는 항생제, 고혈압약, 당뇨약, 항암제 등의 전문의약품 까지 혁신적인 의약품들의 도움으로 지난 세기 동안 거의 두 배 가까이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의약품들의 개발과정을 보면 서양과학철학의 주류 중 하나인 환원주의적(reductionism) 연구방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의 몸을 환원주의적으로 해체하고 분석하여 질병을 치료하거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단일한 약물작용점(표적, target)을 규명하고, 이러한 작용점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성분을 천연에서 분리하거나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신약들을 개발해 온 방식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의약품들이 개발되어 인류의 질병과의 전쟁에 탁월한 무기로 활용되어왔다. 한편,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의 절반 정도가 천연에서 직접 분리되거나 분리된 화합물의 구조를 조금 변형하여 개발된 것으로 조사될 정도로 지난 세기 인류는 의약품 개발에 있어 천연물에 큰 빚을 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질병들도 많으며, 이중 상당수는 증가된 평균수명에 따라 함께 증가하고 있는 만성 난치성 질환들이다. 치매, 파킨슨씨병, 노인성 황반변성(건성), 자가면역성 염증질환 등은 아직까지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대표적인 질환들이다. 이러한 질환들의 특징은 그 발병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어있지 않고 단일 표적의 조절로는 효과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몸은 매우 다양한 약물작용점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질환들은 다양한 표적들의 기능이 복잡하게 관여되어 증상이 발현,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질환의 경우, 기존의 의약품 개발의 주류 개념인 단일 약-단일 표적 (single drug-single target)의 접근법으로는 효과적인 신약개발이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추정할 수 있고, 이들 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효과적인 의약품이 거의 없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할 것이다.

2004년 미국 FDA는 기존의 화합물 의약품과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신약 카테고리를 발표했는데, ‘Botanical Drug’이 바로 그것이다. Botanical Drug이라는 신약 카테고리는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인류가 오랫동안 의약품으로 사용해오던 방식이기도 하다. 각국의 FDA가 신약을 허가할 때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두 가지핵심요소가 안전성과 유효성인데 20세기말부터 점점 이 요소들에 대한 보다 완벽한 자료들이 요구되고 있고, 특히 안전성에 관한 부분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경향은 신약개발의 과정에 막대한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가중시켜 소위 일컫는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이 더욱 깊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Botanical Drug은 이러한 의약품 개발환경에서 미국의 FDA가 새롭게 도입한 신약 그룹으로, 인류가 사용해왔던 식물추출물을 정제나 변형 등의 가공을 최소화하고 의약품으로서의효능과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면 얼마든지 신약으로 허가하겠다

는 취지이며, 이는 시간과 비용측면에서 과중되고 있는 제약업계의 부담을 일정 정도 경감시켜 신약 개발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배려도 어느 정도 내포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Botanical Drug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다중 성분-다중 표적 (multi-components-multi-targets)의 작용방식은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되는 만성난치성 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높은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류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식, 그리고 과학적 탐색법 등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천연소재를 선별하고 이에 대한 첨단 과학적 연구개발을 통해 의약품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오래된 미래’가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Botanical Drug의 유일무이한 특성이자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까지 Botanical Drug으로 허가받은 신약은 미국에서 Veregen 3)과 Crofelemer 4), 영국에서 Sativex 5) 이렇게 세 품목이 있으며, 많은 수의 임상시험이 Botanical Drug의 인체에 대한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 중에는 2-3년 내에 임상 3상이 완료되고 그 결과에 따라 신약허가를 받을 수 있는 잠재적인 제품들도 3개 정도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6), 국내에서도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몇몇 벤처회사들이 글로벌 Botanical Drug 개발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글로벌 블록버스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제품은 나타나지 않았고 허가를 받은 제품 수도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니 일반적으로 Botanical Drug 시장은 아직 그 태동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신약개발 분야에서는 아직 세계적인 기업이 배출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Botanical Drug 분야에서는 ‘first-mover’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현재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만성 난치성 질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로서 안전하고 유효한 Botanical Drug의 개발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 보다 높은 현 상황에서 이 분야에 대한 정부와 산업계의 보다 높은 수준의 관심과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상황인식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Botanical Drug은 원료 식물의 생산과 관련된 1차 산업기술에서부터 빅데이터, AI 등의 4차 산업 기술들까지 다양한 과학기술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최첨단 의약품으로 어느 산업보다도 국가적 인프라 구축과 산학연간의 협력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중요성을 이해하여 천연물연구 클러스터 구축, 천연물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 천연물 빅데이터 통합관리, AI기반 천연물과학기술 개발, 스마트팜 및 식물공장 기술개발 등의 다양한 연구정책 및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부 사업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지속적인 천연물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및 연구개발 지원이 세계적 Botanical Drug의 개발로 이어지고, 글로벌 블록버스터 Botanical Drug을 보유한 세계적인 토종기업의 출현으로 열매 맺어 미래 신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그날을 꿈꿔보며 짧은 소견의 글을 맺고자 한다. N

참고 

1) Friedrich Wilhelm Sertürner (1783 - 1841). 1804년, 아편으로부터 모르핀을 순수하게 분리하였다. 모르핀의 정확한 화학구조는 100년도 더 지난 1925년에 완전하게 규명되었다.

2) Newman, D. J. & Cragg, G. M. Natural products as sources of new drugs from 1981 to 2014. J. Nat. Prod.79, 629-661 (2016)

3) 녹차 잎 추출물. 외부 생식기 및 주변 사마귀 제거용 연고제로 2006년에 승인되었다.

4) 남아메리카 민속식물인 대극과 나무의 수피에서 삼출되는 수지성분. 에이즈환자의 설사 치료제로 2012년에 승인되었다.

5) tetrahydrocannabinol과 cannabidiol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대마 추출물. 다발성 경화증의 다양한 증상 완화제로 2010년 승인되었다. 미국 FDA가 허가한 botanical drug은 아니지만 의약품의 특성이 거의 유사하다.

6) Clinicaltrials.gov 웹페이지 검색결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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