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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서 피어난 꽃의 죽음 '맨 부커상' 한강의 '채식주의자' 읽고

신 사 명(申師明)(harusora@hanmail.net)

  •  중국 중앙민족대 교수
  • 소설가, 문학평론가.
  • 중국민족대 박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국대대학원(석사),
  • 중국 중앙민족대학원(박사), [한국PEN문학] 소설신인상(2008년),
  • 국제PEN클럽회원, 한국현대문학비평학회회원, 엑샘(EXAM)대표,
  • 한중문예콘텐츠협회 국제협력이사, 창조문학 편집위원,
  • 한국문학신문 중국특파원, 중국 두만강문학상(제3회) 등 수상.
  • 현재, 북경중앙민족대 교수.
  • 저서; 소설창작론(창조문학사),
  • 한국어사전 및 국어능력시험집(중국남개대학출판부) 등
  •  

폭력에서 피어난 꽃의 죽음

맨 부커상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상을 받았다. 동시에 NYT에선 올해 세계의 10대 문제작에 포함시켜 발표하였다. 이 소설이 왜 세계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가장 한국적인 토속적 가정의 가부장적 문화배경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이 왜 미국과 유럽인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이 되었는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풀어보자.

1. 폭력의 응어리: 고깃덩어리

현대인들은 물리적의 폭력보다는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폭력은 때론 집단적 보편성을 띠고 소수에게 가학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존중과 존엄을 훼손시키거나 더 나아가 말살하기까지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이러한 인간 사회의 가학성, 폭력성을 영혜라는 인물과 그의 가족들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고 무난하기 그지없던 영혜. 말수도 없고 취미도 없고 부부싸움도 하지 않았던 영혜가 채식을 시작하면서 삶의 방향키는 전환된다. 그녀의 채식은 고깃덩어리의 거부로 말미암은 것이다. 영혜는 남편에게 고기를 안 먹는 이유를 ‘꿈’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매번 꾼다는 꿈은 생피가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혐오하며 괴로워하는 꿈들이다. 꿈속에 등장하는 고기는 살육 당하고 살육하는 폭력의 덩어리로 나타난다.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28)

난 누군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걸 보면 무서웠어. ...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단호하고, 환멸스러운, 덜 식은 피처럼 미지근한.(37)

영혜는 꿈속에서 살육의 혐오를 고스란히 경험하며 육식을 완강히 거부한다. 제일 처음 끔찍하게 이상한 꿈을 꾼 다음, 남편과의 실랑이를 벌이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그녀는 상처로 가득한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자신을 발견한다. 고깃덩어리는 그녀가 거부하고 싶은 상처의 덩어리, 살육의 덩어리, 폭력의 덩어리로 나타난다.

번들거리는 짐승의 눈, 피의 형상, 파헤쳐진 두개골, 그리고 다시 맹수의 눈. 내 뱃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눈.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43)

여섯바퀴째, 개는 입을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53)

평범하다 못해 기본적인 소통도 필요 없는 일상만 각자 영위해 나갔던 영혜 부부. 메마른 삶 속에서 영혜는 고기를 거부하면서 고깃덩어리에 맺힌 상처의 기억을 끊으려고 한다. 고기를 먹이게 하는 것 자체, 즉 육식은 폭력으로 드러난다. 영혜에게 남편은 “고기 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는 거부해야 할 대상이다. 동시에 자신에게 폭력과 상처를 가하는 대상이다. 이어 영혜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들이 가담을 한다.

영혜는 가족모임에서 고기를 먹이려는 아버지에 강력히 저항하다 손목까지 그으며 병원에 입원한다. 그녀의 입을 벌려 억지로 고기를 밀어 넣는 행위는 폭력적이며 가학적이다. 고기를 먹이려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는 폭력이라는 것도 모른 채 가족들은 고기를 먹일 궁리만 하고 있다. 어릴 적 그녀는 아버지의 물리적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평범하게 자라나야 했고, 결혼 후 남편의 무관심한 정신적 폭력에도 역시 대수롭지 않게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고깃덩어리 같은 폭력으로 그녀에게 던져져서 결국엔 강력한 거부의 지경으로 이르게 되었다.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 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61)

영혜는 폭력의 응어리 같은 고깃덩어리를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다. 적어도 영혜를 그렇게 생각한다.

2. 성장의 거부: 채식과 역성장

육식의 거부는 폭력을 거부하려는 동시에 성장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고기를 먹어야 살아갈 힘이 나는 거라며 영혜의 남편과 가족들은 바짝 말라가는 영혜를 걱정하면서 어떻게든 먹이려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는 점점 야위어가고 마치 “이차성징이 사라진 기이한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되어간다. 그녀는 고기를 먹으며 늙어가고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반대로 어린 아이로 되어가는 역성장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른다.

고기를 거부함으로써 나타나는 역성장은 성장을 멈추고 어린 아이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급기야 꽃나무가 되어가는 식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면서 서서히 식물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녀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 있는 몽고반점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멈추고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로 반증이 된다. 형부는 그녀에게 비디오를 찍자고 제안하고 몸에 꽃을 그린다는 것에 끌려 그녀는 승낙을 한다. 비디오 작업은 상대 모델로 인해 제대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영혜는 마치 자신이 꽃이 되어버렸으면 하는 양 몸에 그린 꽃을 지우지 않는다.

어떨 때는 아주 낯익은 얼굴이고, 어떨 때는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에요. 피투성이일 때도 있고......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기도 해요.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142)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146)

영혜는 상처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이 육식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영혜는 어린아이가 되어 갔고 이제는 어린아이의 이전, 마치 인간 탄생 이전의 식물세계로 향해 간다. 영혜는 식물이 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3. 꽃의 죽음: 시들어 가는 삶

언니의 삶 또한 영혜만큼이나 고단하고 무거웠다.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서울생활을 하며 서로의 애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한다. 남편을 사랑한다는 확신도 없이 결혼한 언니. 그저 그의 집안 분위기가 좋아서 그의 말투, 취향, 미각, 잠자리까지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다. 하지만 8년 동안 살면서 서로 체념하고 서로를 좌절시키면서 살아 온 건 아닌지. 영혜와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에게 변명이나 설명도 없이 헤어지고 사라져버린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편과 함께 살 때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라 여기며 앞만 보고 살아온 언니. 영혜의 일이 있고 난 후, 그녀는 삶과 마주보게 된다. 피를 흘리고 있는 가여운 자신의 모습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200)

조용히, 그녀는 술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은,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221)

그녀의 삶은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고단한 게 고단한 줄 모르고 열아홉부터 돈을 벌며 성실과 열심만으로 살아온 날들. 어릴 적 부모로부터의 사랑과 소통의 부재, 결혼 후 남편으로부터의 사랑과 소통의 부재도 삶이 그런 거라 여기고,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그녀에게 갑자기 날아든 건 죽어가고 있는 나, 시들어가고 있는 삶이었다. 동생 영혜와 그녀의 결혼 생활은 무의미하고 건조하게 그렇게 생명을 잃어 금방 사그라들 불꽃처럼 되어버렸다.

그녀는 영혜가 토한 피가 어쩌면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어야 할 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게 꿈인지도, 꿈일지도, 꿈이기를 바라며, 대답 없는 삶에 대해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게’ 묻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혜를 해치려한 자는 없다. 오히려 가족들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온갖 구차한 방법을 동원하여 목숨을 이어가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영혜에게 가학적인 잔인함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진정 원하는 삶, 그녀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삶은 무엇인가. 작가는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통해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벌어지는, 보편성과 논리성의 가면을 쓴 다수자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의 잔인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신상선 편집위원  newsw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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