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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사이언스 창간 제1회 신춘문예 당선작 - 사냥

◇노벨사이언스 창간 제1회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소설당선 손희 ‘사냥’

◌신춘문예 수필당선 권태종 ‘내 친구’

◌신춘문예 시 당선 전대원 ‘내 친구’

◌국제우수문학상(고교부문) 홍혜민 (필리핀 국제고교) ‘한국의 특징’

◌국제우수문학상(초교부문) 권두경 (북경청년정치대학 부속초교) ‘내 친구’

◌국제우수문학상(해외부문) 김종섭 (카나다 교포) ‘가을을 닮은 노신사’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신상성 본지 편집위원(문학박사, 소설가, 디지털서울문예대학 초대총장)

◌예심 : 전현주(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신한대 교수)

         이영철(소설가, 청어출판사 대표)

◌본심 : 성기조(문학박사, 문예운동 발행인, 한국문학재단이사장)

          박진환(문학박사, 조선문학 발행인, 전 한서대대학원장)

         홍문표(문학박사, 창조문학 발행인, 전 오산대총장)

         이계홍(소설가, 한중문예콘텐츠협회이사, 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심사경위

노벨사이언스가 창간되면서 (사)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국제한국어 인터넷백일장’)와 공동으로 제1회 신춘문예 및 문학상 공모를 실시하였다. 본 잡지는 앞으로 한국의 노벨상 후보(6개분야)를 길러내기 위해 뜻 있는 관련분야 교수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동시에 문학분야는 전국의 문예창작학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심사를 했다. 제1회임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교포들의 뜨거운 반응이 결집되었다. 초교에서부터 대학, 일반까지 응모작이 골고루 접수되어 ‘한국문학의 국제적 VR 증강현상’이 새삼 확인되는 마당이 되었다. 특히, 해외대학 중 ‘한국학과’에 재학중인 외국인들의 문의가 많았다. 역시 한류를 타고 한국어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본 협회의 기존 국제적 네트워크가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여기에서는 매년 [2016한중대표소설선집]을 발간한다. 현재 전국 대형서점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어판도 북경 신화서점 등 대형서점에 나와 있다. 여기에 선발된 신춘문예 등 우수작들은 이런 단행본에도 후보작에도 올라가 거대한 중국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심사평

노벨사이언스의 신춘문예는 시, 소설, 수필 등 3개 분야에 모집을 했으며 (사)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국제한국어 인터넷백일장)에서는 초중고 등 전 세계 교포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상 공모를 했다. 최종 본심에 각 분야별로 약5편씩 올라와 경합을 치열한 벌였다. 전반적으로 현장성과 상상력을 잘 전개하였다.

치열한 최종심 논의 끝에 노벨사이언스 신춘문예 부문에서는 손희씨의 소설 ‘사냥’은 이혼한 여인의 애환을 리얼리즘적으로 잘 소화시켰다. 권태종씨의 수필 ‘내 친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친구란 과연 있는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제기를, 전대원(연세대 국문학과)씨의 시 ‘내 친구’에선 떠나간 친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심리적 스토리텔링으로 잘 이미지화 시켰다.각 부문별 당선작으로 초종 결정되었다.

한중문예콘텐츠협회 국제인터넷 문학상 부문에서는 홍혜민(필리핀 국제고교)의 ‘한국의 특징’에서 해외유학 고교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에서 한국의 음식을 유난하게 잘 정리했다. 중학생들의 경우, 작품수준이 다소 미달되어 이번에는 제외시켰다. 특히, 초교에서는 권두경(북경청년정치대학 부속초교) 어린이가 동화 ‘어항 속 작은물고기’에서 어항 속에 새로 들어온 황금물고기가 내 친구에서 결혼 상대자(아내)로 발전하는 과정을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특별상에는 김종섭(카나다교민)은 ‘가을을 닮은 노신사’에서 한국전쟁(6.25)에 참전했던 노인을 만나 인생의 노년과 허무함을 가을 낙엽에 비추어 전개했다. 이 작품을 해외특별상으로 밀어서 추후 제2차 작품심사를 거쳐 등단을 논의하기로 했다. 기타, 장려상에는 정정숙, 김정란, 강은아, 김봉현, 김수정, 박원빈, 배지현, 전대산, 조경옥, 주홍단. 등이 돋보인다.

 

◇ 특전

(1) 본 심사위원회에서 신춘문예 부문별 당선작은 노벨사이언스(창간호)에 발표하며, 손희

(소설), 권태종(수필), 전대원(시)는 정식 등단으로 결정한다. 김종섭(해외특별상)은 추후

제2차 작품심사를 거쳐 등단 논의를 할 것이다.

(2) 장려상 이상은 노벨사이언스와 본 카페(다음/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를 통하여 매월

말, 우수작품을 선별하여 등단을 지원해 나갈 것이다.

(3) 장려상 이상 수상자들은 [국제한국어 평생교육원] www.koreanacademy.net 문학창작

교실을 통하여 개인지도를 해나갈 것이다.

(4) 문의처; 노벨사이언스 홈피 문학란 및 다음/카페(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편집실 010 7797 1900

 

◇노벨사이언스 창간호에는 지면 관계상 신춘문예 소설 당선 손희 ‘사냥’(일반)만 게재되며 기타 당선작 모두 노벨사이언스 홈페이지 www.scinews.net에서 볼 수 있다.

 

신춘문예 소설당선 손희 ‘사냥’ (일반-손희)

  손 희 신학대대학원 문학석사,

  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 총무, 국제한국어평생교육원 교무팀장,

  별망수필문학회 부회장,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밴드리더,

  수상; 한국에세이 작가상(2012년), 한국에세이 작품상(2013년)

 

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손희

2016년은 나에게 요셉이 걸어야 했던 터널처럼 너무 길고 적막한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생의 굴곡 앞에 선 요셉에게 그러하였듯이 늘 피할 길을 예비해 두시는 나의 하나님의 눈동자는 이때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 내 발이 이제는 그만 쉬고 싶다 말할 때마다 그의 날개 아래 쉬게 해 주셨다. 칠흙 속에서도 황홀한 인도하심을 맛보았던 더욱 특별한 해이기에 기쁨의 터널일 수 있었음을 고백해 본다.

무엇보다 단편소설 《사냥》을 쓸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을 허락해 주신 나의 하나님께 먼저 영광과 감사를 돌린다. 또한 늘 밤낮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남편을 비롯한 주위의 기도 동역자분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문학의 꽃'인 소설을 지도해 주시느라 분골쇄신 애써주신 혜운(慧雲) 교수님을 비롯해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지도해 주셨던 많은 교수님들, 끝으로 심사위원분들께 이 지면을 비롯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문인으로 기억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1. 단편소설 최우수작품

사 냥

“조르주 상드는 우리 인생엔 단 하나의…” 드르륵 드르륵, 추도예배의 정적을 깨고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A의 전화이다. 기도 중이다. 전화 받기가 곤란하다. 수신거부 화면으로 돌려놓는다. 드르륵 드르륵, 다시 전화가 온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조심히 휴대전화를 들고 예배 자리를 빠져나온 영은 밖으로 나와 계단에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 무슨….” 영의 안부가 채 이어지기도 전에 다급한 A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메아리친다.

“이쪽으로 좀 빨리 와 줘. 지금!”

“어? 대체 무….”

“지금 우리 집 창문을 소방관들이 부수고 들어오려고 해, 밖에 사람들이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A의 쏟아지는 다급함이 망치질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른다.

“아! 어떻게! 부서질 것 같아! 아아!”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는 A가 누군가에게 맞고 있는 건지, 영은 느닷없이 가슴이 오그라들 것만 같다.

“나 좀 살려줘! 너무 무서워!”

A는 쫓기는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이다. 영은 덜컥 겁이 난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영의 손이 바르르 떨려온다. 빨리 A에게 가봐야 한다. 전화를 끊고 예배 중인 거실로 달려 들어가 남편에게 귀띔한다. 영의 남편도 황급히 가방을 꾸리며 어머니께 양해를 구한다.

“엄니, 친구가 지금 위급한 상황 이래네요. 급히 불러서 가봐야 한 께. 죄송해요.”

“어? 그리어? 뭔 일 인디? 그랴. 얼른 가 보그라.”

가방을 급히 들고 뛰어나오는 영은 초조한 마음에 신발이 잘 신겨지지 않는다. 하이힐을 대충 구겨 신고 절룩거리며 계단을 내려온다. 제발 A에게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먼저 뛰어나간 영의 남편이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온다. ‘끼익!’하고 급하게 차를 세운 영의 남편은 차창을 내리고 얼른 타라며 영에게 손짓한다. A는 나이에 비해 인생의 고비를 너무 많이 넘겨왔다. 그러나 오늘처럼 쇳소리 나는 간절함은 근래에 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또 소방관은 뭔 일이래. 잉?”

망치 소리와 A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남편의 질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창밖의 여름처럼 영의 속도 바싹 타들어 간다. 꽉 막힌 도로도 답답하기만 하다. 좀 더 속도를 내주었으면 좋겠으나 술병을 가득 실은 낡은 화물차가 오르막길에서 빌빌거리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차도 많은데 저 똥차는 또 뭐라냐잉? 아따!” 영은 손톱만 물어뜯는다.

A는 조그마한 가정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고3인 아들을 하나 키우고 있다. 얼마 전까지 어린이집 한쪽 방에서 아들과 함께 검은 달처럼 생활하다가 겨우 이사를 나간 지 대략 삼 개월쯤 되었다. 아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만날 때마다 가슴을 졸이곤 하였다. 이사를 나가면 생활비가 두 배로 들겠지만, 아들 상현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A는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편의 의처증으로 이혼하였다. 영이 가끔 A의 집에 들르곤 했다.

어느 날은 컴퓨터 모니터가 망치로 깨져 있었고 또 어느 날은 방문이 움푹 파이고 깨져 있었다. A가 더 측은해지는 건 이 날의 사건 때문이다. 영이 A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이미 거실의 큰 어항이 와장창 망치로 깨져 있었다. 어항에서 쏟아진 물로 흥건한 거실 바닥은 붕어들이 여기저기에서 팔딱이고 있었다. A의 머리채는 마구 잡혔던 흔적을 그대로 남긴 채 흩어져 있었다.

망연자실한 A의 눈가에서 투명한 세상을 꿈꾸는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A의 입술에서는 행복을 갈망하는 짙붉은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디에서 났을까. 쇠파이프를 들고 A에게 달려드는 A의 남편을 보며 영은 반사적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막아섰다.

“당신! 미쳤어? 그걸로 지금 내 친구를 때리겠다는 거야? 당장 경찰을 부르겠어! 이거 내려놓지 못해?” 영은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막아섰다.

“불러! 저년이 바람이 났으니까 신고해!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고!”

A의 남편은 핏대 선 눈으로 미치광이처럼 영의 팔을 떨치려 했다. 영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A는 머리를 감싸 쥐고 울고 있다. 도저히 영은 그의 힘을 더는 버텨낼 수 없었다. 영은 있는 힘껏 그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으읔! 그가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자! 빨리 뛰어!”

영은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A를 데리고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다.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한 A의 아들 상현이…. 어두운 방, 구석에서 귀를 틀어막고 울고 있던 상현의 모습이 영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A는 폭력은 피했지만 빈 몸으로 나왔기에 뼈를 삭히는 삶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어 갔다.

목을 길게 뺀 어둠은 A를 곡비처럼 살게 했다. 이혼녀라는 딱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게다가 어린 아들의 교육과 돌봄도 짊어져야 했다. 결국, 집에서 어린이집을 시작하였지만, A의 전남편은 이사 가는 곳마다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소주병처럼 쓴 속을 다 비워내도 삶은 늘 흐린 기억을 남기며 술병 속으로 다시 A를 몰아넣었다. 처음에는 아들을 전남편 집에 두고 무작정 뛰쳐나왔기에 시래기처럼 말라가는 것도 A의 몫이었다.

영이 A의 아들을 찾아가 보았을 때, A의 남편은 아이가 굶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었다. 아빠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상현이 혼자 라면만 끓여 먹었다고 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아파트 상가를 배슬거리다가 오락실을 전전긍긍하였다. 영은 A의 아들을 데리고 나와 A를 만나게 해 주었다. A가 억척스럽게 아들의 양육 시비에서 승소하였기에 전 남편의 집어삼킬 듯한 행패는 더욱 거세져갔다. 그때마다 경찰에 신고하였으니 경찰을 부르는 일은 A의 일상이 됐다. 그런데 오늘은 소방관이라니.

2

영이 남편과 함께 A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니 소방차가 두 대나 서 있다. 주민들이 모두 나와 웅성거린다. 소방차 사다리가 A의 창문 밑에 바짝 붙어 허기진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한 소방관이 달그락거리며 창문을 열려 한다. 금방이라도 A의 집 창문이 나무껍질 떨어지듯 떨어져 버릴 것만 같다. 영은 급하게 창 아래 서 있는 소방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요?”

“저 집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갇혀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고 혈기가 오를 대로 오른 건장한 남자들이 고개를 빼고 창문을 주시하고 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것 보세요.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제가 이 집 주인을 아는데 지금 집에 원장님이 있어요. 당장 이 사다리 치우세요.”

보아하니, 혈기 띤 이들은 학부모들이고 저들이 분명 A를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영이 소방관에게 다가가니 저들이 영을 주의 깊게 살피는 눈치다.

“네? 집 안에 사람이 있다고요?”

창문을 열려던 소방관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는 영의 말을 듣고 멈칫한다. 영은 옆에 서 있던 소방관에게 다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서 저분 내려오라고 하세요! 이거 불법침입입니다. 아시죠? 대체 소방서에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영의 과도한 몸부림에 소방관이 급히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아니, 원장님은 없고 아이들만 있다고….”

영은 이미 얼굴이 달아올랐다. 팔짱을 끼고 소방관들에게 다가간다. 멀리서 머리를 쭈뼛 세우고 떡대 좋은 젊은 남자가 영의 주위로 다가서며 귀를 세우는 것이 보인다. 소방관 앞에서 잔뜩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영이 짜증 섞인 투로 말을 한다.

“아무나 열어달라면? 강도한테도 열어주실래요?”

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까 다가왔던 떡대가 저만치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무리 속으로 합류하는 것이 보인다. 이제 영이 A의 친구인지 알게 된 것이다. 영도 힐끗힐끗 저들을 주시한다.

“네, 그럼 저희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만 확인되면 철수하겠습니다.”

소방관 두 명을 데리고 영과 남편은 A의 집으로 향한다. A의 집은 아파트 3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그냥 스쳐지나 계단으로 향한다. 소방관 두 명이 앞서고 영과 남편이 뒤따라 올라간다. 떡대와 몇 명의 남자들이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오려고 한다.

“아따, 거. 소방관분들만 따라오시고. 잉? 딴 분들은 스따압! 요기서 스따압! 확! 그냥!”

영의 남편이 오른손을 들어 칠 듯이 그들을 막아섰다. 그들이 멈춰 선다. 언뜻 봐도 대여섯 명은 되어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다. 인상도 제각각이다. 현관문은 망치 자국이 선명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린다. A는 초췌하고 창백해져 얼굴이 망가져 있다.

“괜찮아?” A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소방관이 입을 연다.

“안에 아이들이 없는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소방관이 이야기하는 뒤로 아까부터 따라오려던 낯선 이들이 멀찍이서 A를 보며 일제히 눈에 힘을 준다. A가 화들짝 놀래며 안으로 몸을 숨긴다.

“안 되겠어요. 자자, 안으로 들어가세요.”

A의 집은 신혼집보다도 더 아기자기하게 꾸며 있다. 크지는 않지만 거실 한편에 A가 좋아하는 어항이 있고 어항 주변으로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다. 거실은 온갖 크고 작은 화초로 봄꿈처럼 향기가 난다. 소방관들은 아이를 찾는 것 보다 꾸며진 장식품에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A는 아까부터 소파에 맥없이 주저앉아 있다.

“없네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소방관이 A에게 묻는다. 그러나 A는 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리 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확인하셨으면 이제 그만 가보세요. 나머지는 경찰과 얘기할게요. 어차피 경찰관도 아니시니….”

“아, 네.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무밥처럼 풀이 죽어가던 A가 제 살을 익혀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다. 영의 남편이 소방관들을 따라나서며 한마디 한다.

“오째! 요런 망측한 일을 잉? 참말로 대략난감이지라. 잉? 즈가 난중에 소방서에 가서 확인서 한 장 떼야것쏘. 잉? ”

신고자들은 날 선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이었지 않은가. 소방관들 탓에 A가 받은 충격은 어쩌란 말인가.

인사를 마친 소방관들이 뭔가 저들만의 눈짓을 나눈다. 영은 소방관들의 표정에서도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확인서를 지금 당장 받으러 가야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혹시 나중에 딴소리를 하면 아파트 CCTV 자료가 필요하다. 마침 근래에 이 아파트에 도난 사건이 잦았던 터라 부녀회에서 CCTV를 대거 설치해 두었다. A의 창문을 정면으로 비치는 것도 있다. 지금은 A를 더 챙겨야 하니 CCTV를 믿자.

영은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 위의 정수기에서 찬물과 더운물을 섞어 와서 A에게 주고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한다.

“많이 놀랐지?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응?”

A의 눈은 슬프도록 비탈져 있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쉼 없이 떨고 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A가 서서히 입을 뗀다.

“새벽부터 학부모들이 몰려 왔거든. 현관문을 부실 듯 난동을 피웠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돌아갈지 알았지. 그런데 한참 있다가 조용한가 싶었는데….”

다시 물 한 모금 축이려는 A의 손이 컵을 놓치려 한다. 영이 A의 입에 컵을 대어주니 천천히 물을 넘긴다. A가 숨을 돌리더니 말을 잇는다.

“기가 막혀…. 어떻게 소방서에?”

법적인 심각한 문제라도 있음이 밝혀지면 책임을 면키 어렵다. 배짱이 좋던지. 아니면 무식해서 용감하던지. A는 소름이 끼치는지 두 손으로 팔을 감싸 안더니 오싹해진 팔을 문지른다. 다시 심장이 떨리는가 보다. 가슴을 손으로 꾹 누른 채 사색이 되어 간다. 창 밖은 여전히 붉은 소음이 웅성거리고 있다. 멀리 정문 근처에서 아이들을 안고, 업은 젊은 여자들이 정자 안에 주름져 있다. 저들도 한패이다. 영은 다시 A에게 다가와 앉는다. 눈물이 무표정하게 섬뜩한 둑의 경계를 넘어설 때 A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어제부터 일어난 일이야. 흑흑…. 세상은 왜 늘 내게서 등을 돌리는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왜 늘 나야? 왜?” 영의 남편은 식탁 위에 놓은 티슈를 찾아서 A에게 건네준다. 닦아도 닦아도 고이는 눈물이 A의 옷자락 위로 눅눅하게 떨어진다.

“돈이 없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거? 사랑 없는 중매결혼?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주렁주렁 딸린 식구들 뒷바라지가 너무 힘들었어. 도망치고 싶었던 게 사실이야. 그럼 돈 없는 부모님이 죄야? 흑흑…!”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고 했으나 영은 가난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불행이 시작된 A 앞에 서 있다. 가난은 A의 간절한 꿈 앞에서 너무 가혹했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면 A는 뭐라 말할까? 가난은 A에게 처절한 생존의 문제였지만, 유리 천장을 이고 있던 것이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관람을 하고 왔거든. 어린이집 입구에 차를 대려고 하는데 결근하겠다던 교사 한 명이 어린이집 앞에 와서 멀찌감치 서 있는 거야. 웬일인가 했지. 아이들을 한 명씩 차에서 내려주는데 그 교사가 돕지 않네.”

교사가 왜 그랬을까? 영은 뭔가 수상하다.

“다른 선생하고 아이들을 내려주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갑자기 학부모들이 현관으로 들이닥쳤어.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을 급히 안아서 데리고 나갔고. 곧이어 남자들이 구둣발로 들어와서는 집기들을 엎고 부수는 거야. 흐흑….”

저들은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메마른 모래알처럼 황량이 울부짖는 A를 보며 사막처럼 건조한 삶을 마주한다.

“사… 실… 은…. 요즘 내가 시청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다 보니 어린이집을 자주 비워야 했거든. 요즘 시에서 어린이집 관리가 엄청나게 빡빡해. 내가 몸이 열 개라도 이걸 다 혼자서 감당하기가 벅차.”

영이 들은 바로는, 나라에서 지원은 적게 나오는데 교사 1인당 아이들 수는 정해져 있다고 했다. 아이들 인원수가 초과하면 불법이다. 빠듯한 회비로 교사월급 챙겨주고 나면 A는 급여를 가져가기도 힘들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A가 요즘 주방 일도 다 한다고 들었다.

“서류도 너무 많아. 종일 서류만 만드는 교사가 따로 있어야 해.”

영이 아는 공무원들은 서류를 중시하다 보니 현장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서류만 완성해 두라는 게다. 어린이집도 예외가 아니었다니!

“나처럼 작은 가정어린이집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문 닫으라는 거나 다를 게 없어.”

A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말이 좋아 원장이지. 차라리 식당 아르바이트가 낫겠다. A의 쓴 그림자가 피곤한 한숨을 내쉰다.

“너, 허리가 부러진다는 게 뭔지 아니? 다음 달에 허리 디스크 수술 날짜도 받았어.”

혼자 살면서 허리까지 망가지면 앞으로 상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려는 건지. A의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며칠 전, 시청에서 애들 식사를 제대로 주라고 전화가 온 거야. 이상하다 생각하고는 냉장고 위에 녹음기를 켜두고 일을 보러 다녔어. 그렇지만 온종일 녹음 된 것을 다 틀어볼 시간이 어디 있겠어. 피곤해 죽겠는데. 그냥 녹음만 했지. 교사들끼리 뭔가 일을 꾸민 거 같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말라 죽은 개구리를 보는 것 같다. 모래알이 이마를 때려 따가울 때 개구리는 숲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야 했다. 이대로 두었다가 A는 뜨거운 태양 아래 말라버릴 것이다. 잠시 창밖을 살피며 다시 이야기한다.

“시청에서 나오는데 말이야. 웃고 있는 나뭇잎들은 구김살이 없어 보였어. 내 삶도 해맑게 반짝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청 담당자 앞에서 얼마나 애간장을 졸이며 서 있었는지 몰라.”

시청의 어린이집 담당자는 A가 들어서자 불쾌하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사진 한 장을 A 앞에 펼쳐 보이고는 불쾌감은 극에 달했다.

“원장님, 아이들에게 된장만 푼 국을 주신다면서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진을 A 앞에 바짝 힘주어 밀어놓는다. 사진 속에는 A의 어린이집 식판이 찍혀있다. 흰 쌀밥 두 수저 가량에 말간 된장국과 단무지가 담겨 있다. 식판 앞에 A의 어린이집 아이가 숟가락을 들고 식사하고 있다. 콧물을 닦지 않아 입술까지 콧물이 흐른다. 게다가 더러운 턱받이를 한 아이가 글썽글썽 눈물까지 고여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항상 콧물 흘리는 아이들은 바로 닦아주도록 지시했었다. A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시청 담당자는 A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된 거 같아요. 저는 이렇게 아이들 식사를 준 적 없거든요. 일단 제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원장님! 행정처분 되고 싶으세요? 이걸 학부모님들이 보시면 어떻겠어요?

담당자는 A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A는 당황하여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리 상현이가 몸이 약하잖아. 돈가스에 단무지를 좋아해서 사다 놓았던 거라고! 상현이 학교가 코앞이잖아. 학교 끝나고 뭘 먹지 않으면 걔가 체력이 안 되거든. 학원을 못 가.”

어릴 적 충격 때문인지 상현이는 늘 허약했다. A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영이 더 잘 안다. 요즘 젊은 애들 개성 있다 했더니 이것도 변형된 개성의 용기인가? 영이 마주한 A의 현실이 낯설다.

“내가 혼자 사니 우습게 봤나 봐.”

사람이 제일 무섭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고 하나 한솥밥 먹는 사람들마저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니. 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아닌가? 영은 세상의 뿌리가 썩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데 웃기는 건 말야. 그 교사 중에 아침에 내가 차 운행할 때면 한 애는 꼭 찬송가를 틀어달라고 한다. 또 한 얘는 독실한 불교 신자야. 지성 들인 떡이라고 맛있게 먹으라면서 생글생글 웃는데 누가 그런 교사들을 의심하겠어?”

서슬 퍼런 칼끝을 감춘 열 길 사람 속을 고요한 경계 밖에서 어찌 알랴. 그저 종교인이라는 게 가슴 시릴 뿐이다.

A는 쓴웃음을 뱉어놓는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늘 선홍빛 생생한 서늘함이 있다. 견고한 욕망의 군락이 심연의 골짜기 아래 생육하고 있음이다. 좋은 일은 하라고 해도 하지 않으면서 가르쳐주지도 않는 나쁜 짓은 잘도 한다. 그나마 교회에서 겨우 위로를 받아가고 있던 A였는데 하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영은 가슴이 답답해 A에게 말한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 그건 좀 알아주라. 응?”

“자자! 그런 몹쓸 것들은 똥뚜깐에 갔다 버려삘고. 잉? 교회는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은께 그런 겨. 잉? 요런 눔, 조런 눔 다 교인이랍시고 댕기자녀. 잉? 언 눔이 익었는지 당최 모르니께 그려. 잉?”

우리가 익어가야 한다면 사람의 근성이 악한 게 맞다. 다만 종교인들은 종교로, 비 종교인들은 양심과 지성으로 더 익어가려고 노력하며 사는 거다. 그렇지만 종교인들보다 비종교인들의 범죄율이 훨씬 높은데도 비 종교인들은 ‘개독교’네 ‘땡중’이네 말한다. 종교인들만 욕먹는 괴상한 세상이다. 저 교사들까지 한 몫 보탠 것이니 영은 A에게 할 말이 없다.

“멱살을 잡고 당장 보상하지 않으면 9시 뉴스에 내보내겠대. 내가 애들을 때렸다나? 한국을 떠나야 되나 봐? 여기서 어떻게 살아?”

유난히 어린이집 사건이 매스컴을 시끄럽게 하는 때이다. 사람 하나 매장하는 거 순식간이었다. 허위 보도도 종종 있었는데 방송된 어린이집마다 문을 닫는 건 자명했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흥분한 사냥개 같았거든. 하얗고 커다란 이빨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당장에라도 뜯어먹을 듯이 덤비고 있었다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녹음기 하나였어. 마침 주머니 안에 가지고 있어서 얼른 녹음기를 눌렀지.”

작고 딱딱하고 온기조차 없는 녹음기 하나만이 유일한 힘이고 위로였다니. 삶의 길을 걷다가 예기치 않은 구렁 속에 헛디뎌진 발이다. 손 내밀어줄 따뜻한 동반자가 있었다면 A가 덜 힘들었을 텐데. 외로운 삶이 남기는 발자국의 마른 등뼈가 애처롭다.

“너도 알지? 이참에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 같아. 당장 6천만 원을 내놓으래.”

A는 가끔 이 동네 얘기를 해줄 때가 있다. 차 운행 시간이 다 돼도 나와 있지 않은 엄마들이 많단다. 집으로 찾아가 보면 원룸에서 속옷 바람에 세수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눈곱도 떼지 않은 애들만 들쳐 안고 나오는 게으른 사람들이라 했다. 어느 날은 아이 회비를 안 주고 결석해서 가보면 야반도주하고 없단다. 모기 한방만 물려가도 병원비 내놓으라며 난리란다.

“뭔 6천만 원?”

“내 통장을 봤거든.”

6백도 눈이 뒤집힐 텐데, 수천만 원이 든 통장을 보고, 제 정신이 아니었나보다. A는 10원 20원만 싸게 줘도 수백 미터 떨어진 상점을 걸어가서 물건을 사는 친구이다. A의 돈 냄새를 맡고 욕심을 부렸겠으나,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화를 부르는 욕심의 손짓이 너무 맹렬하지 않나.

“어제는 끌려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

“끌려다녀? 다친 데는 없었고? 전화했어야지!”

A의 눈은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가 되어버렸다. 어리고 싹싹했다던 교사들이 돈 몇 푼 때문에 가련한 A의 삶을 이토록 험악하게 짓밟다니! 순수를 갈망함은 단순히 꿈인가? 양심은 정말 환상이란 말인가? 윤리를 부정하는 판단이 양심을 삼켜버렸다. 의심만 홀로 세상을 독식하게 하고 공포와 공격이 나약한 거리를 활보하며 순수를 쓸어버리고 있다. 어떻게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영도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3

얼마 전엔 A가 영과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원 산책하던 길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여름밤 별똥별들이 멀리서 떨어지고 있었다. A는 걸음을 멈추고 개천이 내려다보이는 다리에 손을 짚고 섰다. 꽃향기가 올라와 실낱같은 A의 하루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다.

“영아, 이제 내가 가진 게 하나 더 생겼다. 돈이야.”

A가 희소 짓는다.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에 영도 A에게 빙그레 웃어주었다. 바람이 A의 이마를 가른다. A는 두 팔을 벌리고 저녁 향기에 취해갔다. 크게 만족해하는 A를 보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6천만 원을 벌어두었다는 것이었나 보다. A가 힘겹게 손에 쥔 행복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것마저 뺏으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주머니 속에서 미꾸라지처럼 쑥 빠져나가려는 얄궂은 돈 앞에 사람은 너무도 무기력하다. 영은 소름이 돋는다.

“저 사람들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은행을 하나씩 찾아다니는데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기계를 누르는데 머리가 쥐가 나고 손가락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거야.”

얼마 전, 주택가에서 도망가던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문을 열고 나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내용을 TV에서 방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영이 은행에서 소리쳤던들 누가 도와주었을까? 영은 그저 A가 살아있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한테 연락했어야지! 나한테!”

영은 속상해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A와 함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응답도 없는 방안에서 영과 A의 목마른 울음소리가 뒤엉킨다. 누군가 삶은 가난처럼 슬프다 했던가. A의 행복은 또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캐묻고, 삿대질하고, 땅바닥에 무릎 꿇고 빌라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어. 세상이 다 뱅글뱅글 돌더라.”

A는 넋이 나간 듯 힘없이 웃고 만다. 법의 눈을 피한 어둠의 외딴집에서 A의 목을 조르며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먹으려 했단 말인가?

“각서를 쓰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미 은행 문을 닫은 시간이었어. 다행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통장 비밀번호를 모르겠더라고.”

A의 말을 저들이 믿어주었다는 걸까? 마침내 영은 그들이 어제의 일을 후회하고 오늘 난동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입금만 했지 출금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진짜였어.”

얼마나 A가 악착같은 삶을 살아온 건지. 그렇게 쪼들린다면서도 통장에서 돈을 뽑아 쓰지 않았다니.

“오메. 징하게 구두쇠였고만요 잉? 스쿠루지가 따로 읍씨유. 잉? 그랴서 오찌된 겨. 잉?”

영의 남편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웃는다.

“거래 정지가 됐어요.”

은행에서 비밀번호 오류 횟수를 제한한다더니 덕을 본 것이다.

“오늘 아침 10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다들 집으로 간 줄 알았지. 그런데 내가 어디로 도망갈까 봐 밤새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나 봐. 은행 문 열면 바로 나를 데리고 가려고.”

A는 물컵만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A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은 유리잔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세상이겠지. A가 허리가 부러지도록 벌어들이는 돈을 가지고도 구정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현실이 영은 가슴 아프기만 하다. 아니, 어쩌면 그 돈이 결국 또 다른 구정물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은 갑자기 상현이를 건져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스친다.

“그런데 상현인?”

“저 사람들이 오기 바로 전에 학교에 갔어. 상현이가 학교에 간 다음이라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몰라. 안 그래도 약한 우리 상현이 요즘 입시 준비로 한참 예민해 있거든. 그나저나, 바보 같은 사람들. 저 사람들의 바닥을 보고나니 나도 생각이 바뀌었어.”

영은 A를 도와야 한다. 일단, 변호사도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그때 또다시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문 열어! 당장 나오지 못해?”

피를 빨아먹으려고 덤벼드는 좀비들이다. 영은 떨고 있는 A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경찰서에 전화할 테니까. 자기는 변호사 좀 알아봐 줘.”

잠시 후 변호사와의 통화를 마친 영의 남편이 다가온다.

“뭔 눔의 세상이 죄다 도둑눔들이여 잉? 조 눔들도 변호사도 다 도둑눔이네 잉? 아차 하믄 그냥 돈 몇천이 눈앞에서 쉬잉! 날아가는 세상이구마 잉? 돈 음씀 오디다 발을 붙이고 서 있어야 허는 거여? 변호사 비용이 2천에서 3천이랴 잉?”

사람들은 돈이 행복의 기준은 아니라 말하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돈을 움켜쥐려는 몸짓을 멈추지 않는다. 남편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쓰레기 보듯 하는 세상이니 돈 없이 발붙이고 설 수 있는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다. 낙담하고 있던 A가 잠시 생각하며 말을 꺼낸다.

“내 옆에 너희가 함께해 준다면 나도 싸워보겠어. 상현이를 봐서라도 일어서야 하니까. 이럴 땐 난폭했던 상현이 아빠라도 옆에 있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 없이 혼자라는 게 이렇게 뼈가 저린 거였다니. 영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영의 남편이 엄지로 코를 훌쩍 문지르며 영에게 윙크를 날린다. A의 얘기를 듣고 나니, 영은 남편의 저런 행동도 밉지 않아 보인다.

“나마저 없다면 상현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난 꼭 이겨야 해!”

A의 음성은 비장했다.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 굳건히 버텨낸 생솔가지 같은 A를 영은 말없이 끌어 안아주며 솔향에 눈물을 섞는다. 그러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다.

“밖에서 저분들 얘기를 대강 듣고 왔는데요. 얘기 들어보니 학부모님들이라고 하던데. 잘 상의하셔서 서로 좋게 합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 고소하실 거면 서로 오시면 됩니다.”

경찰은 A의 집을 휙 한 번 훑어보더니 그냥 나가버린다.

“뭐여? 시방 경찰이 바람과 함께 걍 사라진 거여? 잉?”

모두가 황당하여 말문이 막혀버렸다. 영은 구정물로 가득한 A의 세상 뚜껑을 힘차게 따줘야 할 것만 같다. 모조리 비워내 주리라. A를 사막의 개구리처럼 놔두지 않으리라.

“야! 문 열어! 경찰들도 합의하라잖아! 당장 이 문 열라고!”

남자들의 우악스러운 목소리가 현관을 뚫어버릴 것만 같다. 정신을 차리는 쪽이 인간사냥에 성공하는 것이다. 먹느냐 먹히느냐가 관건이라면 이대로 사냥감이 될 수는 없다. 영은 A를 위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당신들 모조리 다 고소할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곧 변호사가 올 거야!"

4

영이 A를 데리고 경찰서에 오는 것이 이번이 몇 번인가? 쾌쾌한 담배 냄새가 뿌연 조사실 안을 맴돌고 있다. A가 힘겹게 녹음하였다는 내용이 흘러나온다. A 옆에 나란히 앉은 우악스럽던 그들이 서로 힐끗힐끗 찔러대며 A를 노려보고 있다. 녹음기가 소란을 떨수록 저들도 함께 흥분되어 간다. 껌을 짝짝 씹고 있던 떡대가 입을 연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돈을 뺏지는 말자고 했잖아!”

“니가 언제 그랬어? TV 9시 뉴스에 전화하겠다고 저 여자 머리를 쥐어박은 게 누군데?”

저러다 곧 몸싸움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다. 한 남자가 교사들을 향해 소리 지른다.

“야! 니가 시킨 거잖아! 솔직히 말 못해?

“조용히 하세요!” 경찰이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친다.

“저 선생이 다 시킨 거라고요! 일이 잘 될 거라고 했는데. 야! 이게 뭐야? 너 때문에 우리까지 이게 뭐냐고?”

“아이를 때린 것도 제가 아니에요. 저 선생이 때린 거예요. 진짜예요. 잘 들어보세요. 제 목소리가 아니잖아요. 믿어주세요.”

모든 것이 녹음기 안에서 실타래 풀리듯 풀려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을 조종했다는 또 다른 교사는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고 껌만 씹다가 창밖을 보며 눈을 흘긴다. 그때 조사실 철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수갑을 찬 채 끌려 들어오고 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세상에! 그는 A의 전남편이 아닌가. A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걸음을 멈춰 선다. A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목에 찬 수갑을 보고 있을 때였다. 껌을 씹으며 창밖만 응시했던 교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A의 전남편에게로 다가간다. 교사는 냅다! 그의 뺨을 내리쳤다. “짝!!” 나이도 어린 교사가 때린 그의 뺨은 어느새 검붉게 손자국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나쁜 놈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니가 나를 꼬시지만 않았어도 내가 왜 이 진창에 섞여 있어야 하는 건데? 이게 너 때문이라고! 어떻게 책임질 거야? 책임져! 책임지라고!”

A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영의 부부가 A를 부축하며 A의 전 남편을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A의 전남편이 꾸민 일이었다니. A는 오열하며 울부짖는다.

“야아! 이 인간아! 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그래도 저 사람들이 나를 짓밟을 때 너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나쁜 노옴! 이 나쁜 놈아! 그러고도 니가 상현이 아비라는 거야? 아아아!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땅을 치며 통곡하는 A의 소리가 조사실 밖으로 쩌렁쩌렁 울려 나갔다. 그 순간 조사실 철문 안쪽으로 누군가 픽! 하고 쓰러진다. 조사를 진행하던 경찰들도 모두 놀라 일어서서 보니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쓰러진 것이다. 울고 있던 A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하게 굳어간다. A는 기어가다시피 하며 그 학생에게로 옮겨간다. 상현이었다.

“어머! 우리 상현이! 상현아! 상현아아! 어떻게…! 니가 어떻게 여길? 상현아아!!”

A의 오열은 새끼를 잃은 어미 사자처럼 포효했다. 여름 태양보다 더 뜨겁게 조사실에서 천장을 뚫었다.

"내 아들 상현이! 우리 불쌍한 상현이! 상현이 살려주세요! 내 아…!“

A가 상현이를 부르다가 그만 쓰러지고 있다. 조사실은 시커먼 정적이 흘렀다.

며칠 후, 병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영이 내린다. 병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영의 손에는 꽃다발과 도시락이 들려있다. A와 상현이 함께 병실에 입원해 있는 것이다. 영은 A가 행복했던 그 밤을 떠올리며 병실을 향한다. A와 다시 하늘의 별을 보고 꽃향기로 여름을 노래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다. 병실 손잡이를 열려는데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영은 걸음을 멈춘다. 상현이와 A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문에 고개를 기대어 선다.

“엄마. 미안해. 내가 아빠 몫까지 보태어서 잘해줄 게….”

문밖에서 듣고 있던 영은 코끝이 찡해 온다. 드디어 A의 가슴에도 이제 또 다른 별 하나 반짝이려나? 영은 조용히 병실 문을 연다. 그리고 조그만 장미꽃 한 송이 A의 가슴에 얹어준다. 상현이가 영의 허리를 감아쥐며 눈물을 감추었다.

 

2. [노벨사이언스] 신춘문예 수필당선작

안동출생, 강산조경(주) 대표이사, 대구한의대 문학석사 (풍수지리 전공)

안동 ‘월요수필문학회’ 회원, 안산평생대학 수필반수료(제1기)

 

내 친 구 권 태 종

1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다. 말의 어원이나 본질이 갖는 심오한 뜻은 일천한 내 지식으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말이다. 보통 한 세대를 3십년으로 볼 때 생물학적으로 부모보다 자식이 삼십년은 더 산다는 생리학적 경제논리를 적용한 계산일 것이다. 친구와 더불어 살아야 할 시간 삼십년을 감안할 때 부모를 팔아 친구 산다는 실리를 우선한 계산이 아닐까. 황당한 계산법으로 혼자 웃어보기도 했다.

‘나에게는 부모를 팔아서 살 정도의 친구가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 소중한 친구? 그럴 수 있는 막역한 친구? 우선 단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푸근하다. 뭔가 평소 복잡한 일상에서 가졌던 긴장의 끈을 놓고 무장해제 되는 낱말이다. 옛말에 “진정한 친구가 셋은 되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았노라 얘기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럼, 넌 그런 친구가 몇이냐?”고 다그친다면, 우선 내 속 좁은 성격에서 오는 문제일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3십여 년 전 일이다. 경주에서의 직장생활이 어려울 무렵 김해의 골프장 경리부서로 먼저 직장을 옮긴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골프장 코스관리부에 나같은 토목공사 전문기술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해에서 새로운 생활에 신바람 났다. 가족들과 함께 아예 김해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당시 들불처럼 일어났던 골프장 노조에 가담하게 되었다. 언뜻 노조책임자가 되어 달포간 파업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 파업으로 인해 김해 골프회사에서 쫓겨났다. 약2년간 헌신하던 직장에서 나와 다시 경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뒤돌아보면 황당한 일이다. 노조결성 당시 160여 명의 전 직원들이 하나같이 움직이며 나를 노조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사실 내 의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를 맨 처음 초청해준 친구의 부추김을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위장전술로 이중적 전략을 쓴 것이다. 진정한 의리와 우정도 돈과 권력이라는 허상 아래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최악의 노사관계 긴박한 상황 속에서 사장 측에서는 ‘해고’ 쪽의 행정폭력을 칼부림했다. 그 친구가 사장 뒤에 숨어 있으면서 이중적 가면전략을 쓴 것이다. 사용자 측과 노조 측에 양다리 걸치면서 고도의 사기음모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경주에서 노동조합에 관여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나를 표적 스카웃하여 이용한 셈이다. 교포 경제인들이 설립한 이 골프회사는 결국 나를 용도폐기해 버린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강제퇴사는 충격이다. 가족들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김해에서 겨우 안정된 직장과 가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다시 보따리 싸야 하는 날벼락에 멍멍할 뿐이다.

2

그 당시 김해 골프회사에 가기 전에 경주의 물천리에서 자영업자로서 팍팍한 일상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 물천리 동네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가 찾아왔다. 한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 김해로 이사하기 전날에는 육척거구의 이 친구가 육척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대성통곡하던 기억이 난다. 그 상황을 기억하면 가끔 내 입가장자리가 횡으로 늘어진다.

김해로 떠나려고 이삿짐을 싸고 있을 때 그 거구가 풀죽은 얼굴로 찾아왔다. 둘 다 술을 좋아하여 습관처럼 만사 제쳐두고 술자리를 했다. 이 거구가 갑자기 “친구야. 말라꼬 낯선 김해에 갈라 카노? 내캉 여서 그냥 이래 살만 되잖아? 그동안 우리끼리 쌓은 정은 어쩌라고…” 어린아이처럼 목청껏 천진하게 울어대는 그 친구를 달래어 한밤 중 그 친구의 집에 업고 갔다.

6척 거구 바위덩어리를 낑낑대고 그의 집 침대 위에 무사히 눕혀 놓고 돌아오는 오솔길에서 쳐다 본 밤하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늦은 밤 그 초롱하고 맑은 은하수가 와르르 쏟아질듯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돌아오는 먼 길, 내 눈에서도 무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거구 친구는 자기차로 우리 가족을 김해까지 데려다 주고 밤늦도록 이삿짐 정리까지 해주고 돌아가기도 했다.

거구와는 겨우 이태를 사귀었지만 주말이면 두 가족은 어디든 의기투합하여 함께 다녔다.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주의 거구 친구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따금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다시 경주로 돌아와 다시 곤궁한 나날을 하루살이 날품으로 겨우겨우 보내고 있을 때 거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조경분야도 있는데 너에게 딱 맞는 공사야, 전문기술자인 니가 함 해 보래이!” 역시 김해 친구와는 다른 진실성이 확실한 거구야 음,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달려갔다. 포항~익산간 고속도로 영천휴게소 조경공사였다. 영천시 금대리 일원의 공사구간은 대부분 바위 절취구간으로 기초지질이 악성조건이었다. 게다가 나무가 심어질 자리에 식생토층을 만들어 준다고 거구가 실어다 준 돌흙들이 쌓여 있었다.

어른머리 통 크기의 폐사와 돌들이 빼곡하게 널린 현장여건은 돌 골라내는 일만해도 이익창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엉겹결에 하청에 재하청을 맡은 나로선 결국 마이너스 재정만 떠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거구친구는 손해볼 공사라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반강제로 맡긴 것이다.

그날 이후, 여러 차례 그 친구와의 조우는 있었지만 등지고 말았다. 심지어 내가 경주 충효동 흥무공원조성 공사를 할 때 내 숙소의 바로 코 앞에 그 거구친구 사무실이 있는데도 거의 일년간 찾아가지 않았다. 나의 속좁은 생각일까? ‘친구’라는 낱말을 요즘 다시 고민해 본다. 현재 안동의 우리 집에서 가까운 도산서원 계상서당은 퇴계 선생이 독서와 저술로서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대 실력자인 율곡이 23 나이로 찾아오자, 퇴계가 ‘학문적인 친구’라는 명목으로 도학을 전수 하였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이들은 30년이란 나이를 초월하여 ‘문우(文友)’라는 이름을 평생 사용했다. 우리네 인간사에서 과연 친구란 무엇이며,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진정한 친구’란 어느 경지까지 올라가 있어야 하는가? 깊은 성찰의 이 밤,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결국 친구와 돈은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경주의 거구 친구를 종종 떠올리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해본다. 내 성격에서 오는 일부 자폐의식이 좋은 친구를 등진 게 아닌가 한다. 그 거구 친구는 자기가 조경분야에 생소한 토목공사를 일단 하청 받아놓고 보니 내 생각이 났을 것이다. 공사총액을 들여다보니 수 억 대의 금액이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나를 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설계변경이나 공사여건 등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전문가인 나에게 도중에 맡긴 것이다. 어쨌든 도움을 주려다가 오히려 피해를 준 결과를 초래하고 그 거구도 자기 가슴을 분명 쓸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스스로 옹졸하지 안았나? 자책이 되었다. 이런 글귀가 가끔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수시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입니다!” 역사의 한 자락 속에서 읽은 이 구절이 의미심장한 하루였다.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찬구’의 의미를 정의하는 게 아닐까. 사소한 도움에도 크게 감사할 줄 아는 내 마음으로 내년을 다시 정의해 봐야겠다.

***

 

3. [노벨사이언스]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내 친구

전 대 원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

 

너울대며 춤추는 바닷물

멀리 손 흔드는 창가에 앉아

지금은 기억 속에 깊이 잠들어 버린

네 얼굴 그린다.

 

철썩 철썩 성난 파도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오늘도 울부짖으며 머리 속에 새겨 지려던

안타까운 기억마저 망각의 언덕 너머로

데려가 버린다.

 

언제나 짭짤한 소금기 입에 문채 달려오는

푸른 바다를 보면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시간 속에서 어차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절절한 아픔 하나가 살그머니 나타나

가슴 아프게 흔든다.

 

잡히지 않는 시간 속에 빛 바랜 추억 하나

가슴 깊이 간직한 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 속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많은 시간 지난 오늘도 이 세상 무엇보다

우정 소중히 여긴 네 모습 때문에

때로 잠 못 이루고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쓸 때가 있다.

 

비바람 몹시 불던 늦가을 어느 날

안녕이란 인사 남기고 달려가 버린

슬픈 뒷모습 떠올리며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마저 지우지 못한

늦가을 달력 한 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4. [노벨사이언스] (고교부문)

제1회 국제한국어 인터넷 백일장 수필 당선작

한국의 특징

홍 혜 민

(인터내셔널 필리핀 마닐라학교(ISM) 11학년)

 

나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 11학년 학생이다. 서양의 식민지를 오래 겪었던 역사 탓인지 동양의 스페인이라 불릴 만큼 이곳은 다양한 인종들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처럼 그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생활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3년 전 금발과 파란 눈의 외국 친구들이 우글거리는 학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나는 혹성에 착륙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서양 아이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맞이했을 때 어찌나 서먹서먹한지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나는 속으로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가방에서 꺼내야할지 말지 속으로 한참 고민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나 교내 식당에서 사온 피자를 꺼내놓고 먹기 시작하자 나도 용기를 내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에 관해 외국 친구들의 반응이 두려웠던 것 같다. 원래 패스트푸드 같은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이라 엄마가 챙겨주신 음식을 싸오긴 했지만 막상 낯선 외국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꺼내려니 뚜껑을 열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차라리 햄버거나 사먹을 걸 그랬다 싶어서 거추장스럽게 도시락을 가져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첫날이라고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주셨는데 망설이던 끝에 도시락 뚜껑을 열고 깻잎과 참치와 야채가 들어간 김밥을 꺼내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외국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도시락으로 몰렸다. 아이들은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고 내게 “나 한 입만!” 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김밥을 하나씩 나눠주며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 전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엄마가 싸주신 한국음식을 점심으로 싸가지고 갔고 그렇게 하루하루 한국 음식을 나눠 먹다 보니 쉽게 외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엄마 역시 나의 도시락을 향한 친구들의 쟁탈전 얘기를 들으실 때마다 기뻐하시며 불고기와 잡채, 김치전 등을 넉넉히 싸주셨다.

알고 보니 외국 아이들 중에는 이미 한국여행을 다녀온 후 한국 음식 애호가가 된 경우도 있었고 이곳 현지의 한국음식점을 찾아 주말마다 한국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필리핀은 따뜻한 동남아 기후답게 음식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소금과 식초가 들어간 짜고 시큼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불고기나 삼겹살, 잡채, 김밥 등이 무척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엄마는 영어를 배우며 알게 된 일본과 말레이시아, 브라질 국적의 아줌마들과 한 달에 한번씩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친분을 쌓아가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음식 앞에서는 서로 경계심을 내려놓고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각 나라의 대표 동아리가 있었는데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한국 문화 동아리인 KCC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처음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영어공부를 따라가느라 바빠서 한국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했다. 따라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후배와 한국인끼리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전파하는 이 동아리의 활동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한국 문화 동아리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음식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파는 베이크 세일을 주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교내식당 옆에 부스를 열고 각자 집에서 대표적인 한국음식을 만들어 와서 외국친구들에게 팔기로 했고 이렇게 모인 수익금은 동아리 활동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몇 주 전부터 역할을 분담하고 음식의 품목을 정했다. 마침내 베이크 세일 당일 날, 교내 식당복도에 설치할 테이블을 빌리고 집에서 공수해온 음식들을 진열했다. 동아리 회원 어머니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음식을 꺼내놓았다. 나는 볶은김치와 참치를 넣어 만든 주먹밥과 불고기를 넣은 주먹밥을 가져왔고 다른 친구들은 잡채와 김밥 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교내 식당에서 파는 한국 음식도 있긴 하지만 외국인 조리사의 손을 거친 음식이라 한국음식 특유의 맛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음식을 팔기 시작했는데 과연 집에서 가져온 이 음식들을 외국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는 우려는 음식을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가면서 한순간 사라졌다. 갑자기 부스 앞에 우르르 몰려온 외국 아이들은 서로 주먹밥과 잡채를 사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한번 사가지고 간 아이들이 다시 와서 두번 세번 사먹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교직원들과 외국 선생님들까지 줄을 서서 음식을 사가는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짧은 점심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끝났고 우리회원들은 점심도 쫄쫄 굶어가며 음식의 재료와 이름을 한국발음으로 가르쳐주느라 정작 우리 입 속에는 김밥 하나도 넣지 못했다.

우리가 싸온 음식은 삽시간에 불티나게 팔렸고 뒤늦게 찾아와서 아쉬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한국음식에 대한 인기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를 조금이나마 알렸다는 자부심에 솔직히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잡채, 불고기, 김밥, 김치전, 주먹밥 등의 인기도 좋았지만 한국과자와 컵라면 역시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학교에 와서 이날처럼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얼핏 교내식당 안을 돌아다보니 학생들 대부분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고 햄버거나 피자 코너는 평소와 다르게 텅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외국 아이들이 계속 몰려와서 “노 모어 잡채 (No more Japchae)?”라고 묻고 갈 정도로 우리의 베이크 세일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솔직히 이 행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한국음식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에 나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역시 필리핀처럼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며 암울한 역사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 특유의 독창적인 문화와 전통을 지켜왔고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선진국민으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다. 사실 필리핀만 해도 자국의 문화와 대표적인 음식을 손에 꼽기 어려운 실정인데 한국은 고유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더운 나라에서는 즉석에서 튀기고 볶는 요리가 대부분인데 한국음식은 오랜 시간 숙성된 깊은 손맛을 담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한국 음식의 우수성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식이야말로 글로벌한 세계문화의 첨병이자 이웃과 정겹게 음식을 나누어먹는 한국인의 따스한 정 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의 벽을 허무는 도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한 한 나라의 음식문화는 곧 그 나라의 국력임을 함께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었다.

 

5. [노벨사이언스] (초교부문)

제1회 국제한국어 인터넷 백일장 동화 당선작

내 친구 -어항 속 작은 물고기

권 두 경

(중국 북경청년정치학원 부속초등학교 3학년)

 

나는 작은 어항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입니다. 나는 혼자 사는 영어 선생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영어선생님이 한국에 가셔서 나는 논술선생님 집에 온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걸 싫어합니다. 논술학원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싫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심한 장난은 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심한 장난을 치셨습니다. 바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밥 주는 척’하고 나를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선생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미 손을 재빨리 빼고나서 나한테 “어우, 지느러미 예쁘네?” 하면서 나를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예쁜 황금물고기 한 마리를 사 왔습니다. 내가 혼자 사는 어항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후, 선생님은 나보다 황금물고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황금 물고기는 잘난 척도 안 하고 내가 더 부럽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은 어느 때보다 제일 좋은 시간입니다. 밥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줬습니다. 황금물고기가 재빨리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황금물고기는 나머지 밥을 나한테 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황금물고기와 싸우거나 잡아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너무 잡아먹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황금물고기가 여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같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 친구가 이제 애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황금물고기와 나는 다른 종류라서 결혼을 못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황금물고기와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한번 시도를 해봤습니다. 황금물고기에게 결혼을 하자고 청혼했습니다. 황금물고기도 어쩐지 기쁘게 동의를 했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에게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바로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과연 아버지를 닮은 내 종류일까, 아니면 엄마를 닮은 황금물고기 종류일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아기, 아니 우리 딸 아니면 아들을 진지하게 관찰해 보았습니다. 바로 황금물고기였습니다. 이제는 딸인가 아들인가만 관찰하면 됩니다. 바로 나를 닮은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아빠가 되었습니다.

***

6. [노벨사이언스] (해외부문)

제1회 국제한국어 인터넷 백일장 수필 당선작

가을을 닮은 노신사

김 종 섭

만추의 시간은 늘 부풀어 오른 풍선의 모양처럼 들뜬 마음으로 느껴가는 가을을 담아가기에 분주해진다. 하루를 열어가는 마음에는 이미 커지는 계절의 정취를 동경하고 나선다. 단풍이 빠르게 물들어갈 때쯤 시선은 하늘과 나뭇잎 사이에 맞닿은 곳에 걸터앉아 가을을 느껴가곤 했다. 마음의 공허함은 형용할 수 없는 가을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채우고 담고 가려는 마음의 동요가 움직일 때쯤에도 가슴은 낙엽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낙엽 너머로 시선을 움직여 세상 밖 번민의 시간을 덮고 세상 속 삶에 지친 찌꺼기를 가슴으로부터 씻어 내리려 하지만 늘 생각만 늘어가고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나의 가을은 아쉬움만을 남겨 놓고 훌쩍 떠나버린 늦가을은 공허의 파문의 흔적만이 고독의 열병을 앓아가고 있었다.

하늘이 높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의식 없이 손을 내밀어 불어오는 늦가을 차가운 공기와의 마주침으로 하루의 만남에 위로를 대신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호사스러운 눈은 단순한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나선다. 설익으므로 아직 채 깨어나지 않은 몸을 무의식적으로 일으켜 세워 생각의 이유도 묻지 않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주인을 잃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골프장 세움 간판이 한층 더 가을의 공허감을 휘감고 주차장에는 크고 작은 차가 떨어져 뒹구는 낙엽의 터전을 밟고 지루한 표정으로 주인을 기다리며 한낮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휴일의 하루는 특별히 약속된 시간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이전의 휴일이 그랬듯이 별반 다르지 않은 반복의 연속을 가진 또 하나의 휴일 속 일상의 시간을 담아 가게 된다.

골프장에 도착하는 순간 포근히 다가와 시야에 내려 앉은 초록의 풍경을 바라보는 하나만으로도 눈의 포만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소박한 바람 한 점이 코끝에 가을 향기를 전해온다. 바람의 존재감도 사치일 정도로 호흡을 아껴 내 뱉고 움츠렸던 마음의 동요를 주저 없이 그린 위에 덩그러니 내 던졌다. 그린은 늘 사계의 시간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초록은 일 년 내내 변함없이 홀로 서기의 생을 준비해 나간다. 늦가을의 정취는 낙엽의 힘겨운 몸부림의 움직임이 보였다. 비바람에 옮겨간 낙엽은 주인을 잃고 그린 위에서 마지막 삶의 진념을 불태워간다.

하늘이 유혹의 장막을 편다. 원형의 작은 골프 공을 힘껏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본다. 하늘을 맞닿을 듯 솟아오르기를 반복해 나가고 마음의 발걸음마저 빨라지다 보면 어느 새 또 다른 그린 앞에 멈추어 서게 된다. 먼저 앞서갈 이의 행동을 지루한 기다림의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을 때 팔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노신사가 조심스럽게 뒤돌아와 발길을 멈추어 섰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날입니다."라는 말로 청량제 같은 인사를 건네어 온다.

"괜찮으시면 같이 운동할까요?" 얼떨결에 주저 없이 "네 좋습니다."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캐네디언으로 보이는 노년의 신사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다고 하셨다. 잠시 이어가던 말을 멈추고 무엇인가 스쳐 지나가는 과거를 회상이나 하듯 하늘을 슬그머니 주시하는 듯싶더니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거침없이 흥분된 어조로 말문을 열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제 같았던 세월이 벌써 66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네요. 시간이 참으로 빠르기만 합니다. 지난 66년 전의 흔적이 노년의 나이가 되어 돌아왔으니 참으로 허망한 세월의 흐름을 새삼 더 느껴가는 듯싶습니다".

“그 당시 나는 젊은 나이에 한국에 있었습니다. 6.25라는 한국전쟁에 참전했었지요". 그 말을 듣는 나도 모르게 순간 노신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표정을 흘끔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깊게 파고들어 간 주름살 앞에 시선이 멈추었다. "고마우신 분!" 소리 없는 혼자의 말은 가슴의 전율을 타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노신사의 연로한 모습에서 왠지 모를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젊은 날의 뒤 이야기가 숱한 세월을 보낸 지금에서야 야속함으로 비집고 들어와 빛 바랜 노년의 이름으로 불러져야 하는 비정함이 어쩌면 이유의 까닭은 아니었을까?

그가 쳐올린 작은 원형의 흰색공이 하늘을 향해 힘겹게 날았다. 우리는 날고 있는 공의 중심을 쫓아 시선을 마주했다. "나이스 플레이". 서로의 호흡은 칭찬과 환호를 아낌없이 주고 받아가면서 공통의 의식이 있는 친숙함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짧아진 늦가을 오후는 빠르게 석양의 노을이 나뭇가지 위로 옮겨 놓기에 분주했다.

서둘러 운동을 끝내고 노신사는 그린을 벗어나기 위해 골프커트를 힘겹게 주차장 쪽을 향해 옮겨가기 시작했다. “친구!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또한 함께 운동을 즐겨간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자! 기회가 되면 오늘처럼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아쉬움의 작별의 뜨거운 인사를 함께 나누고 난 후 노신사는 아쉬움의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차가 골프장 정문을 지나 시야에서 멀어져 갈 때까지 희미해진 차의 뒤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인연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친교를 해나간다. 그 많은 인연 중에도 특별한 관계를 가져가기 위해 서로는 마음을 모아 관심과 공감이 이루어가기 시작하고 ‘친구’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이 가을에 붉게 타오르던 낙엽을 잃었다. 하지만 낙엽의 마음 대신 이 가을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가선 노신사를 얻었다. 내게 담은 가을의 시간은 관대하다. 아직 떠나지 않은 가을 녘 앞에 소박한 소망하나를 얹어본다. 그가 오늘 쏘아 올린 공처럼 하늘을 향해 가볍게 날수 있는 건강의 깃털과 가을을 닮은 노신사를 만나게 해준 가을날의 추억을 꼭 기억해 달라고...

 

이정희 기자  newsw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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